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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도'에 갇힌 4689명
글 : 공지영, 배재흥, 신현정, 고건, 김동한
영상 : 김동현 | 그래픽 : 박성현, 성옥희
편집 : 박주우, 연주훈, 김금아
Part1. 진실을 묻다
선감학원 피해자들은 누명을 썼다. 돌아갈 집이 있고, 보호받을 부모가 있는데도 '부랑아'로 낙인찍히며 선감도란 이름의 섬에 영문도 모른 채 갇혔다. 경기도는 1982년까지 40년 동안 8~18세의 부랑아 4천689명을 지옥도라 불리는 선감학원으로 보냈다.
01
이들 중 누가 부랑아인가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선감도에 수용됐던 원생의 얼굴이 섞여 있다. 누가 부랑아인지 구분할 수 있겠는가? 이 사진에서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4·5번이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및 독자 제공
'그저 그렇게 보여서'…
영문도 모른채 끌려간 아이들
위에 여러 아이의 사진이 있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아이와 선감도에 수용됐던 원생의 얼굴이 섞여 있다. 누가 부랑아인가. 외형만 보고선 누구도 섣불리 구분할 수 없는 게 당연하다. 그럼에도 경기도는 길가에서 쓰레기를 줍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길거리 아이들을 무작위로 수집했다. 근거는 허무할 정도로 빈약했다. 그저 부랑아처럼 보여서.
이곳에 수용된 원생들은 자신의 처지를 납득할 수 없었다. 집과 부모가 그리웠을 테고, 폭력과 강제노역으로 얼룩진 선감학원 시설에 쉬이 적응하지 못했다. 원생 일부는 목숨을 걸고 바다를 헤엄쳐 섬 밖으로 빠져나가기 위한 탈출을 감행했고, 이 과정에서 목숨을 잃는 원생들이 속출했다.
대개는 제대로 된 묏자리도 없이 아무렇게나 묻혔고, 수십년이 지난 현재에 이르러서야 망자들의 흔적을 찾기 위한 발굴작업이 이뤄지고 있다.
선감학원은 누구의 책임인가.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지만 가슴 깊이에 묻어왔다. 시대 탓을 했고 먹고 사는 일을 핑계댔다. 그렇게 40년이 흘렀다. 이제 명료하게 다시 묻는다. 선감학원은 누구의 잘못인가.
02
공문서 확인결과 '허술함' 드러나
경인일보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입수한 1976년 5월·7월 경기도 고양군(현 고양시) 사회환경국 사회위생과 '부랑아 특별단속' 공문. 경기도지사 발신 문서로, 거리를 배회하는 부랑아들을 선감학원에 이송할 것을 경기도가 명령했다.
경기도의 무분별한 부랑아 단속
경인일보는 경기도의 부랑아 단속이 얼마만큼 허술하게 이뤄졌는지 보여줄 수 있는 당시 공문서를 확보했다. 해당 문서에는 도가 부랑아라는 존재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 잘 드러난다.
도는 1976년 7월6일부터 8일까지 사흘간 시군 전 지역을 대상으로 부랑아 단속에 나섰다. 이에 앞서 도는 각 시군에 '부랑아 단속'이란 제목의 공문을 보냈다. 부랑아 단속의 목적은 다음과 같다.
"도시 환경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실시하고 있는 부랑아 및 비행소년 선도 사업을 추진하여 많은 성과를 거양한 바 있으나 아직도 거리를 배회하거나 걸식하는 아동이 근절되지 않고 있어 다음과 같이 지시하니 자체 계획을 보강하여 단속 및 선도에 철저를 기하도록 할 것."
당시 도가 부랑아를 대대적으로 붙잡아 들인 이유는 다름 아닌 도시 미관을 위해서였다. 집이 없는 아이를 보호하거나, 가출한 소년을 무사히 집으로 돌려보내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도의 시각에서 부랑아는 그저 도시를 더럽히는 존재였을 뿐이다.
도시 미관 이유로 대대적 '청소'
'껌팔이·구두닦이' 잣대 자의적
도는 부랑아 단속을 1년 내내 실시했을뿐 아니라,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에서는 '특별 단속'까지 벌이며 길거리 청소에 열을 올렸다. 실제로 도는 1976년 5월4일부터 19일간 '유원지 및 관광지 일원'에서 부랑아 특별 단속을 진행했다. 이 때 각 지역에서 붙잡힌 부랑아들은 월 2회 도로 인계돼 '선감학원'으로 이송됐다.
단속 대상은 '부랑아 껌팔이 구두닦이 및 거리요보호아동'이었다. 부랑아를 단속하는 공무원들은 그러나 부랑아를 판단하는 기준을 정확히 알지 못했다. 단속을 지시하는 공문에 적혀 있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동복리법이나 동법 시행령 또는 시행규칙도 부랑아에 대한 명확한 정의를 명시하지 않았다.
이는 부랑아를 수용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기도 선감학원 조례'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도는 껌팔이나 구두닦이 등 가정의 생계를 위해 길거리에서 돈을 벌던 아이들 또한 부랑아로 싸잡아 단속했다. 부랑아에 대한 기준이 분명하지 않으니, 이른바 '가두직업소년'은 부적절한 부랑아 단속의 주요 타깃이 됐다.
길거리에 나가 부랑아를 직접 단속하는 직원들은 성과를 숫자로 증명해야 했다. 부랑아를 판단하는 상세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도 성과를 위한 단속을 해야했고, 그 기준은 다분히 자의적이었다.
경인일보는 과거 도의 직원으로, 부랑아 단속 업무를 담당했던 실무자들의 진술을 확보했다. 부랑아로 분류되면 인신구속에 가까운 불이익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선정 방식에 신중을 기울였어야 하나, 피해자들의 고통에 상응해 결코 조심스럽지 못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 가정형편이 어려워 다음 해로 입학을 미루고 수원에서 낮에는 구두를 닦고 밤에는 극장에서 장사를 하며 홀어머니와 동생들의 가장 역할을 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수원극장 앞에서 구두를 닦고 있었는데 시청직원으로 추정되는 남자가 따라오라고 하길래 따라갔더니 집에 가지 못하게 했다.
- 1973년 8월 선감학원 수용된 김모씨
부랑아는 배고프다든지, 걸인 비슷하게 '나 밥 좀 주세요' 하는 애들이 부랑아인 거고 불량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냥 풀이하면 가정이 불우해서 떠돌아다니는 아동이다. 제 판단은 집이 아니고 외부에서 잔다든지 밥을 어디로 얻어먹으러 다닌다든지 의복이 남루하다든지 이런 것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외모적으로 판단한다.
- 1970~80년대 경기도 부녀아동과 근무자
구걸하고 뭘 자꾸 달라고 하거나
행인 주머니에 손이 들어가고 그런 애들이죠..
가게에서도 음식을 훔치고 그런 애들..
- 단속 실무자 권모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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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3
국가의 인권 유린
"개밥도 이렇게는…"
배곯은 아이들, 짐승처럼 강제노역
국가가 존재하는 가장 큰 이유는 '자국민 보호'다. 모든 역사를 통틀어 자국민을 보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때 국가는 가장 큰 위기에 봉착했다. 선감학원의 비극은 여기서 비롯된다.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선감학원이 대한민국에서도 이어져 온 단 하나의 연결고리는 '부랑아'. 자국민을 보호할 국가 자체가 부재했던 일제시기와 자국민 보호의 의무를 저버린 대한민국은 '